평창과 영월인의 생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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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후세백작 작성일16-10-27 05:50 조회3,914회 댓글0건본문
[평창과 영월인의 생각의 차이]
후세백작 2016.10.11 20:29
앞전글에서 영월은 김삿갓에게 누명을 씌워 팔아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영월은 그런것 상관없이 상당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양월은 무엇이 특이한가 그 차별성을 한번 보실래요??
영월에 체험의 박물관은 3-4일 걸려도 다 못볼정도입니다.
별로마 천문대, 난고 김삿갓문학관, 단종역사관,호야지리 박물관, 영월 국제 현대미술관. 조선 민화 박물관.
곤충박물관. 화석박물관.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인도미술박물관. 세계 민속악기 박물관. 동물생태관. 동강생태
정보센타.쾌연재도자 미술관. 묵산미술박물관. 만봉불화 박물관. 영월초등교육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영월종교
미술박물관. 영월 미디어기자 박물관. 영월동굴생태관. 동강사진박물관. 베어가곰 인형박물관등 모두 영월에서
관람이 되는 박물관이다.
이번 평창하리 청동기 유적 발굴에 평창인들은 아직 그게 무엇인가 생소하지만. 또한 이것으로 박물관 짓자하면
그까짓것 할지 모르지만.. 만약 그것이 영월에서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어보기도 전에 바로
큼지막한 박물관 하나 때려 지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고조선인의 발견이란 테마로...
일전 글에서 고조선은 민족이 아니라 제정일치의 국가라는 글을 쓴 것처럼 우리민족은 만주위의 북쪽에서 남하한
예맥의 민족으로 강원도에선 예와 맥족의, 그것도 강릉쪽의 예족의 민족정기는 활발합니다만 이것은 국가가
아닌 민족의 부족체인 것이고 지역적 마찰과 전투로 조선이란 위치에서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 고조선입니다.
당시 초기국가에서 지역적 통치의 세분화가 이뤄지기 어려웠슬 것이란 점에 그래서 같은 비파형 청동검이 출토되는
것은 동일지역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일반적 논리에 본인은 고조선이란 표현을 붙입니다.
이것은 담당 학에사의 시기적 구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다려봐도 우리나라 역사가들 입에서
고조선인줄 알면서 고조선이란 답은 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전 개천절은 고조선 단군이 국가를 처음 여시고 하는 국정 공휴일 입니다.
여기에 단군이 열다니.... 단군은 1대 단군왕검에서 47대 단군 고열가까지 있습니다.
단군이란 일반명사로 제사장의 의미를 나타내는 임금님 같은 존재의 명사이고 단군, 고열가가 이름의 고유명사이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개천절을 치우든 고조선 역사를 이정하든 둘중의 하나르선택하여야 할 것이고 단군성전등의
단어의 모순도 정리하여야 할 터인즉, 그러기에 평창 비파형 청동검 유적지의 매장자의 유해가 고조선 시기이면서도
역사가들은 고조선이란 표현을 붙일까 하는 의구심에 한발 먼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90년대 동강이 떠오르며, 또한 동강댐 백지화에 성공한 그들,,,자기 편리만의 이기적 태도인가 했더니 그들의 논리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노력은 지금 영월을 무수히 아름답게 까꾸어 놓았다.
당시 평창인들 왈,,,정선은 아리랑 팔아먹고 영월은 동강팔아 지자제 예산을 쓰건만,,평창은 그런 마당쓸기가 아닌
스키장등 굵직한 기업 두 세개면 그들보다 지방세가 훨씬 더 양호하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가을 평창에선 백일홍 축제로 자만하지만,,, 연휴기간중 영월은 대박났다 한다. 초만원 사례의 대박났다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지만 돈도 솔찬케 실렸슬 것이란 점이다.
만약 초,중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평창으로 체험학습을 떠난다면 무엇을 할까요??
물론 자연을 대상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겠지만 그것은 전국어디서나 가능한 일일테고 아마 전국에 체험학습의 장으로
데려가려면 알찬곳은 영월이 단연 으뜸이다,
만약 평창의 백일홍 축제 하나를 보러오기겐 경비가 좀 비싸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영월 여행은 천문대만 예약하고
밤까지 기다리는게 아니라 가까이 여기저기에 학습의 장이 널려있기에 비용효과도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내 고장 문화를 넘어서서 인도 조각 박물관이나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민화나 미디어 박물관까지 다양하게
콘셉화가 되어있다. 그들의 노력은 동강살리기를 넘어서서 이전에 문화 가치창출을 하고있다.
그 기간동안에 평창은 무얼 했는가?? 탐관오리의 작태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것도 아닐것이고 그저 세월만 흘렀슬
것이다. 그 좋은 소재들 모두 잃어버리고 ,,,
이번에 쓴 김삿갓과 영월의 관계에서 천동에 김삿갓의 아들 익균의 묘에관한 평창사람들의 역사적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영월인들은 동강댐 백지화이후 부던히 노력하여 오늘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각종 브렌드로 가치창조를 하는데..
평창군청 세수담당 언 선배왈,,,
정선, 영월 동강팔아서 지방세 수입보단, 평창은 굵직한 스키장 한,두개 회사가 지방세 실적이 더 좋은데 하던
이야기처럼 태만과 오만은 오늘도 작동하고 있는듯 하다.
아마 영월인들은 많은 박물관과 연계되는 사회에서 퇴임후가 더 바쁠것이란 즐거운 비명도 지를 것이다.
그것이 준비성의 영월과 평창의 차이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친구들,,, 시골이라 지역환경에 은퇴하면 할게 없다고들 표현한다.
그럼 도시로 나가 아파트 경비라도 할래... 이것도 긍정적인 생각이지만 은퇴후 시간은 꼭 그런것은 아니다.
은퇴 후 시간은 돈벌이에만 급급하기보다는 ,,, 조그마한 소호를 창업하여 마진보다는 유통체게의 질서를 잡아가는
원론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든다든지,,봉사란 의미에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지 안은가??
은퇴한 친구를 만나면 요즘 뭘 하고 지내냐고 인사를 한다. 그럼 뭐 할게없어 백수야 하고들 답을 한다.
그래, 그래도 연금은 잘 나오제 하면 아주 좋은듯 웃으며 답을 한다.
후세백작은 기다렸단듯이 이넘 너 요때다 하고 기를 팍 죽이는데...
야 친구야~ 평균연령이 87세라는데 너 앞으로 30년 백수해볼래.. 갈수록 노년층은 늘어난다는데...
친구왈 백수 할만하다고 답을 한다, 지기랄 이제 일년차이니 놀만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네 아들 하나제,, 한 사람이 벌어 두사람몫 연금을 어떻게 주겠냐?? 아마 똑한 청년들은 이제
연금붙기를 기피할거야. 그래도 당국은 이북처럼 연금 떼 먹지는 않을거야,,,그건 선납받아먹고 약속이니까...
다만 인플레를 가속시킬지는 모르지만,,,
그래 앞으로 경제원리에 인플레가 10배로 부풀면 상대가치는 1/10 아닐까하고 겁을 준다.
---------------------------------------- 겁먹진 마이소,,,농이었습니다------------
이런 말끝에 행여 후세 너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신지 모르지만,, 정말 그런 생각을 갖으신 분은 뒷장
까지마시고 면전에서 논쟁을 하세요,,, 그렇치 않고 뒤에서 꿍지럭거리는 말이 들리면 전글에 예에서 보듯이...
미켈란 젤로는 천지창조의 그림에 명계의 미노스 얼굴에 잔소리 많은 담당 추기경 얼굴을 그렷듯이 후세백작의
펜맛을 보여 드리오리다.
" 펜은 총구의 방향도 돌리는 힘을 가졌다" 또한 펜은 역사로 기록하는 유일한 장치이다. 그러기에 이 덫에 걸리면
죽음보다 더 뼈아픈 것이다" 농담입니다만 너무 찐하네요.
이렇게 보면 영월에서의 관광문화의 최대 수혜자는 펜션, 주유소, 식당, 일용잡화에 종사자들일 것이다.
그러길래 이들은 도네이션(기부)문화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높을수록 선진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도 미국식 세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기부가 있어야 한다.
수업시간에도 농담이 젤 재미있던데,,, 농좀 더하고 갑니다.
미국에서 잘나가던 한국식당,, 하루아침에 망했다. 이유는 세금포탈,,,
잘나갈때 한국식당도 이상히 보이지만 바지인 유럽계 사장을 앉히고 주변에 행사에 기부도 척척해야 한다..그런데
꼬부러치고 한국으로 송금하고,,,그러다간 어느날엔 일시에 들이닥쳐 1~20년치 세금 인덱스를 내밀고 다 결제하라
한다. 방법은 그냥 때려닫고 야행길을,,,
아마 사촌넘도 한 100은 잘나가는듯한데 좀 까부는듯,,,돈 쥐고있을땐 충고는 안 멱힌다. 당하고 봐야 실감을,,,
건데, 한국의 세금은 웃겨도 웃겨도,,,
연간 매출 1억이면 법인으로 전환이 종합소득세가 없어 더 득이다.
그럼 인터넷 판매회사가 유통업으로 월 천만원 팔아서 뭘 먹고 살수있나..월 1억만 판다고 가정할때 연 매출 12억,,,
신용카드 매출이라 자동 성실신고이고 여기에 세금을 때우는 공제자료가 역부족하여 외제차사고, 보험비 내고, 기름,
수리비 심지어 된장찌게비용도 세금에 공제첨부한다.
세금으로 외제차 사는나라.... 우리나라. 그래도 사는 사람은 합법적이라 잘못이 없지않나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난번에도 이야기헷듯이 이효석 문학의 밤은 3회만에 봉평으로 떠내려 보냈다.
나의 글"가산 이효석 선배님은?이란 글에서 밝혔듯이 봉평은 고향도 아니고 평창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기기전
2년간, 아버지 이시우씨가 수송동에서 교편을 잡다 다시 진부면장으로 부임길에 내려오며 둔내출신 새엄마랑
생활한 곳이 봉평일뿐이다.
물론 새엄마도 효석의 문학적 소양을 간파하고 같이 독서하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도 보이지만 그는 유년기
시절을 평창보통학교에서 생활하며 그의 문학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평창에서 봉평은 당시로서는 구불구불한 뱃제를 넘어 금당계곡쪽으로도 백옥포까지 넘어 봉평을 당도하아면
약 100여리 길인데..자주 왕래하진 못해도 방학이면 아버지나 진부면으로 가는 전령을 따라 장평서 헤어지고
봉평으로 걸어들어가며 밤에 처음 바라보는 그 풍경에 인상이 남아 그의 작품에 묘사되는듯 하며...
그의 유년시절 평창에서의 생활은 당시 평창은 아직 평창강 제방이 공사되지 않은듯 보통학교는 중리 감리교회
자리였으며 감리교회와 병설된듯 하며 초학년때는 교회내 기숙사가 있었으나 이후엔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자전적 책 "영서의 기억"에서 아마도 목사님 자녀인듯한 여자친구랑 가을 품평회를 쏘아다녔다는 천재소년의
평범한 일상등의 유년시절등의 사색이 봉평에선 빠져있는 것이다.
그의 사생관은 2년의 봉평생활보다는 평창공립보통학교(평창초등학교)시절 6년간의 평창생활에서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정서를 평창에서 더 나타낼 수 있는것이다.
(여기서 과거 조선시대의 평창지도인 오면지도나 고지도엔 노산아래 御와 객사가 표시에서 이상한 점은 손님을 맞는
객사가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점의 해석은 아마 평창은 원주강원 감영의 사신의 왕래는 御(관헌) 앞을 지나다니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에 그 엣날 평창을 찾아오는 코스는 쌍전봇대 내를 건너서 남산 뒤를 타고 종부를 통해 유동가는 내를 건너
조금 아래에서 다시 천동으로 건너서 응암이나 마지로 건너서 마지막 마지로 가는 평창강을 건너야 한다.
다섯번을 건너야 평창을 찾어오는 첩첩산속의 고장이라 표현해도 무방한듯하며 객사가 위에 있는 점은 쌍전못대
여울을 건너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선아리랑이 평창아리랑이란 수십마디의 분석과 임란당시 평창전사에 이야기의 모순점등 평창 역사의
재구성을 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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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금의 영월과 평창인의 차이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 차이의 처음은 생각의 조그만 차이에서 이렇게 벌어진 것입니다.
가령 무엇을 할려면 주무부서에선 예산이 부족한데 하고 포기해 버린다. 그럼 영월은 모두 사비 출연한 것입니까??
예산이 없다고 이야기함 보다 예산을 어디서 따 올것인가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창엔 아주 걸작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잘 아는 평창예술회관 입니다.
예술회관엔 규모도 큰 3-400 계단에 다리까지 만들자면 아마 건물 두어채 부피일듯도 하고, 당초예산 2-30억에
2-300억이 넘는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슬까 하는 이야기는 평창사람들은 잘 모르는듯 하지만 평창은 이러한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 평창 하리 비파형 청동기"유적에 박물관을 건립함이란 그리 어려운 점은 아닐 것입니다.
평창인들도 영월인들처럼 긍정적 사고의 마인드를 가지고 어느 누가 평창에 이주하여 살아도 좋을 만큼, 또한
평창의 후대인에게 물려줄 유산과 아름다운 산하를 잘 관리하고 보존시키며 명품 평창으로 거듭나길 희망합니다.
영월은 분명 문화영월이라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창은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요??
후세백작 2016.10.11 20:29
앞전글에서 영월은 김삿갓에게 누명을 씌워 팔아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영월은 그런것 상관없이 상당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양월은 무엇이 특이한가 그 차별성을 한번 보실래요??
영월에 체험의 박물관은 3-4일 걸려도 다 못볼정도입니다.
별로마 천문대, 난고 김삿갓문학관, 단종역사관,호야지리 박물관, 영월 국제 현대미술관. 조선 민화 박물관.
곤충박물관. 화석박물관.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인도미술박물관. 세계 민속악기 박물관. 동물생태관. 동강생태
정보센타.쾌연재도자 미술관. 묵산미술박물관. 만봉불화 박물관. 영월초등교육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영월종교
미술박물관. 영월 미디어기자 박물관. 영월동굴생태관. 동강사진박물관. 베어가곰 인형박물관등 모두 영월에서
관람이 되는 박물관이다.
이번 평창하리 청동기 유적 발굴에 평창인들은 아직 그게 무엇인가 생소하지만. 또한 이것으로 박물관 짓자하면
그까짓것 할지 모르지만.. 만약 그것이 영월에서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어보기도 전에 바로
큼지막한 박물관 하나 때려 지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고조선인의 발견이란 테마로...
일전 글에서 고조선은 민족이 아니라 제정일치의 국가라는 글을 쓴 것처럼 우리민족은 만주위의 북쪽에서 남하한
예맥의 민족으로 강원도에선 예와 맥족의, 그것도 강릉쪽의 예족의 민족정기는 활발합니다만 이것은 국가가
아닌 민족의 부족체인 것이고 지역적 마찰과 전투로 조선이란 위치에서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 고조선입니다.
당시 초기국가에서 지역적 통치의 세분화가 이뤄지기 어려웠슬 것이란 점에 그래서 같은 비파형 청동검이 출토되는
것은 동일지역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일반적 논리에 본인은 고조선이란 표현을 붙입니다.
이것은 담당 학에사의 시기적 구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다려봐도 우리나라 역사가들 입에서
고조선인줄 알면서 고조선이란 답은 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전 개천절은 고조선 단군이 국가를 처음 여시고 하는 국정 공휴일 입니다.
여기에 단군이 열다니.... 단군은 1대 단군왕검에서 47대 단군 고열가까지 있습니다.
단군이란 일반명사로 제사장의 의미를 나타내는 임금님 같은 존재의 명사이고 단군, 고열가가 이름의 고유명사이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개천절을 치우든 고조선 역사를 이정하든 둘중의 하나르선택하여야 할 것이고 단군성전등의
단어의 모순도 정리하여야 할 터인즉, 그러기에 평창 비파형 청동검 유적지의 매장자의 유해가 고조선 시기이면서도
역사가들은 고조선이란 표현을 붙일까 하는 의구심에 한발 먼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90년대 동강이 떠오르며, 또한 동강댐 백지화에 성공한 그들,,,자기 편리만의 이기적 태도인가 했더니 그들의 논리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노력은 지금 영월을 무수히 아름답게 까꾸어 놓았다.
당시 평창인들 왈,,,정선은 아리랑 팔아먹고 영월은 동강팔아 지자제 예산을 쓰건만,,평창은 그런 마당쓸기가 아닌
스키장등 굵직한 기업 두 세개면 그들보다 지방세가 훨씬 더 양호하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가을 평창에선 백일홍 축제로 자만하지만,,, 연휴기간중 영월은 대박났다 한다. 초만원 사례의 대박났다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지만 돈도 솔찬케 실렸슬 것이란 점이다.
만약 초,중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평창으로 체험학습을 떠난다면 무엇을 할까요??
물론 자연을 대상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겠지만 그것은 전국어디서나 가능한 일일테고 아마 전국에 체험학습의 장으로
데려가려면 알찬곳은 영월이 단연 으뜸이다,
만약 평창의 백일홍 축제 하나를 보러오기겐 경비가 좀 비싸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영월 여행은 천문대만 예약하고
밤까지 기다리는게 아니라 가까이 여기저기에 학습의 장이 널려있기에 비용효과도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내 고장 문화를 넘어서서 인도 조각 박물관이나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민화나 미디어 박물관까지 다양하게
콘셉화가 되어있다. 그들의 노력은 동강살리기를 넘어서서 이전에 문화 가치창출을 하고있다.
그 기간동안에 평창은 무얼 했는가?? 탐관오리의 작태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것도 아닐것이고 그저 세월만 흘렀슬
것이다. 그 좋은 소재들 모두 잃어버리고 ,,,
이번에 쓴 김삿갓과 영월의 관계에서 천동에 김삿갓의 아들 익균의 묘에관한 평창사람들의 역사적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영월인들은 동강댐 백지화이후 부던히 노력하여 오늘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각종 브렌드로 가치창조를 하는데..
평창군청 세수담당 언 선배왈,,,
정선, 영월 동강팔아서 지방세 수입보단, 평창은 굵직한 스키장 한,두개 회사가 지방세 실적이 더 좋은데 하던
이야기처럼 태만과 오만은 오늘도 작동하고 있는듯 하다.
아마 영월인들은 많은 박물관과 연계되는 사회에서 퇴임후가 더 바쁠것이란 즐거운 비명도 지를 것이다.
그것이 준비성의 영월과 평창의 차이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친구들,,, 시골이라 지역환경에 은퇴하면 할게 없다고들 표현한다.
그럼 도시로 나가 아파트 경비라도 할래... 이것도 긍정적인 생각이지만 은퇴후 시간은 꼭 그런것은 아니다.
은퇴 후 시간은 돈벌이에만 급급하기보다는 ,,, 조그마한 소호를 창업하여 마진보다는 유통체게의 질서를 잡아가는
원론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든다든지,,봉사란 의미에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지 안은가??
은퇴한 친구를 만나면 요즘 뭘 하고 지내냐고 인사를 한다. 그럼 뭐 할게없어 백수야 하고들 답을 한다.
그래, 그래도 연금은 잘 나오제 하면 아주 좋은듯 웃으며 답을 한다.
후세백작은 기다렸단듯이 이넘 너 요때다 하고 기를 팍 죽이는데...
야 친구야~ 평균연령이 87세라는데 너 앞으로 30년 백수해볼래.. 갈수록 노년층은 늘어난다는데...
친구왈 백수 할만하다고 답을 한다, 지기랄 이제 일년차이니 놀만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네 아들 하나제,, 한 사람이 벌어 두사람몫 연금을 어떻게 주겠냐?? 아마 똑한 청년들은 이제
연금붙기를 기피할거야. 그래도 당국은 이북처럼 연금 떼 먹지는 않을거야,,,그건 선납받아먹고 약속이니까...
다만 인플레를 가속시킬지는 모르지만,,,
그래 앞으로 경제원리에 인플레가 10배로 부풀면 상대가치는 1/10 아닐까하고 겁을 준다.
---------------------------------------- 겁먹진 마이소,,,농이었습니다------------
이런 말끝에 행여 후세 너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신지 모르지만,, 정말 그런 생각을 갖으신 분은 뒷장
까지마시고 면전에서 논쟁을 하세요,,, 그렇치 않고 뒤에서 꿍지럭거리는 말이 들리면 전글에 예에서 보듯이...
미켈란 젤로는 천지창조의 그림에 명계의 미노스 얼굴에 잔소리 많은 담당 추기경 얼굴을 그렷듯이 후세백작의
펜맛을 보여 드리오리다.
" 펜은 총구의 방향도 돌리는 힘을 가졌다" 또한 펜은 역사로 기록하는 유일한 장치이다. 그러기에 이 덫에 걸리면
죽음보다 더 뼈아픈 것이다" 농담입니다만 너무 찐하네요.
이렇게 보면 영월에서의 관광문화의 최대 수혜자는 펜션, 주유소, 식당, 일용잡화에 종사자들일 것이다.
그러길래 이들은 도네이션(기부)문화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높을수록 선진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도 미국식 세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기부가 있어야 한다.
수업시간에도 농담이 젤 재미있던데,,, 농좀 더하고 갑니다.
미국에서 잘나가던 한국식당,, 하루아침에 망했다. 이유는 세금포탈,,,
잘나갈때 한국식당도 이상히 보이지만 바지인 유럽계 사장을 앉히고 주변에 행사에 기부도 척척해야 한다..그런데
꼬부러치고 한국으로 송금하고,,,그러다간 어느날엔 일시에 들이닥쳐 1~20년치 세금 인덱스를 내밀고 다 결제하라
한다. 방법은 그냥 때려닫고 야행길을,,,
아마 사촌넘도 한 100은 잘나가는듯한데 좀 까부는듯,,,돈 쥐고있을땐 충고는 안 멱힌다. 당하고 봐야 실감을,,,
건데, 한국의 세금은 웃겨도 웃겨도,,,
연간 매출 1억이면 법인으로 전환이 종합소득세가 없어 더 득이다.
그럼 인터넷 판매회사가 유통업으로 월 천만원 팔아서 뭘 먹고 살수있나..월 1억만 판다고 가정할때 연 매출 12억,,,
신용카드 매출이라 자동 성실신고이고 여기에 세금을 때우는 공제자료가 역부족하여 외제차사고, 보험비 내고, 기름,
수리비 심지어 된장찌게비용도 세금에 공제첨부한다.
세금으로 외제차 사는나라.... 우리나라. 그래도 사는 사람은 합법적이라 잘못이 없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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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도 이야기헷듯이 이효석 문학의 밤은 3회만에 봉평으로 떠내려 보냈다.
나의 글"가산 이효석 선배님은?이란 글에서 밝혔듯이 봉평은 고향도 아니고 평창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기기전
2년간, 아버지 이시우씨가 수송동에서 교편을 잡다 다시 진부면장으로 부임길에 내려오며 둔내출신 새엄마랑
생활한 곳이 봉평일뿐이다.
물론 새엄마도 효석의 문학적 소양을 간파하고 같이 독서하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도 보이지만 그는 유년기
시절을 평창보통학교에서 생활하며 그의 문학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평창에서 봉평은 당시로서는 구불구불한 뱃제를 넘어 금당계곡쪽으로도 백옥포까지 넘어 봉평을 당도하아면
약 100여리 길인데..자주 왕래하진 못해도 방학이면 아버지나 진부면으로 가는 전령을 따라 장평서 헤어지고
봉평으로 걸어들어가며 밤에 처음 바라보는 그 풍경에 인상이 남아 그의 작품에 묘사되는듯 하며...
그의 유년시절 평창에서의 생활은 당시 평창은 아직 평창강 제방이 공사되지 않은듯 보통학교는 중리 감리교회
자리였으며 감리교회와 병설된듯 하며 초학년때는 교회내 기숙사가 있었으나 이후엔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자전적 책 "영서의 기억"에서 아마도 목사님 자녀인듯한 여자친구랑 가을 품평회를 쏘아다녔다는 천재소년의
평범한 일상등의 유년시절등의 사색이 봉평에선 빠져있는 것이다.
그의 사생관은 2년의 봉평생활보다는 평창공립보통학교(평창초등학교)시절 6년간의 평창생활에서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정서를 평창에서 더 나타낼 수 있는것이다.
(여기서 과거 조선시대의 평창지도인 오면지도나 고지도엔 노산아래 御와 객사가 표시에서 이상한 점은 손님을 맞는
객사가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점의 해석은 아마 평창은 원주강원 감영의 사신의 왕래는 御(관헌) 앞을 지나다니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에 그 엣날 평창을 찾아오는 코스는 쌍전봇대 내를 건너서 남산 뒤를 타고 종부를 통해 유동가는 내를 건너
조금 아래에서 다시 천동으로 건너서 응암이나 마지로 건너서 마지막 마지로 가는 평창강을 건너야 한다.
다섯번을 건너야 평창을 찾어오는 첩첩산속의 고장이라 표현해도 무방한듯하며 객사가 위에 있는 점은 쌍전못대
여울을 건너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선아리랑이 평창아리랑이란 수십마디의 분석과 임란당시 평창전사에 이야기의 모순점등 평창 역사의
재구성을 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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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금의 영월과 평창인의 차이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 차이의 처음은 생각의 조그만 차이에서 이렇게 벌어진 것입니다.
가령 무엇을 할려면 주무부서에선 예산이 부족한데 하고 포기해 버린다. 그럼 영월은 모두 사비 출연한 것입니까??
예산이 없다고 이야기함 보다 예산을 어디서 따 올것인가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창엔 아주 걸작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잘 아는 평창예술회관 입니다.
예술회관엔 규모도 큰 3-400 계단에 다리까지 만들자면 아마 건물 두어채 부피일듯도 하고, 당초예산 2-30억에
2-300억이 넘는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슬까 하는 이야기는 평창사람들은 잘 모르는듯 하지만 평창은 이러한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 평창 하리 비파형 청동기"유적에 박물관을 건립함이란 그리 어려운 점은 아닐 것입니다.
평창인들도 영월인들처럼 긍정적 사고의 마인드를 가지고 어느 누가 평창에 이주하여 살아도 좋을 만큼, 또한
평창의 후대인에게 물려줄 유산과 아름다운 산하를 잘 관리하고 보존시키며 명품 평창으로 거듭나길 희망합니다.
영월은 분명 문화영월이라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창은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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