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사지 탑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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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후세백작 작성일16-08-01 21:44 조회3,9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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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게시판은 사진 두장만 맨 위에 올릴 수 있어 부득이 여러 사진은 올리지 못합니다.
그점 양지하시고
맨 위의 사진은 수항사지 3층석탑의 가상적 시물레이션입니다
아래 사진은 수항사지탑을 5층으로 하였슬때의 가상적 사진입니다.
< 태백곡수다사 탑에대한 나의 해석 >
후세백작 2015.10.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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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항리 사지 탑의 이해>
삼국유사에서 자장율사와 월정사에 주석한 신효, 신의 및 유연스님이 이곳 수다사에 거처했으며, 원주의 폐사지인 법천사지의 지광국사 부도비에 따르면 지광국사 혜린은 이곳에 10년간 주지를 역임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엔 7세기 초반부터 단종 2년(1432)경까지 기록되었으나 "동국여지승람"엔 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15세기경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수항리 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49호로 자장율사의 행적에 깊이 관련 있는 역사적 사찰로 이곳 지역명에 따라서 "수항리 사지"로 명명되었으나, 1984년에‘태백곡수다사"(太白谷水多寺)라 각자 된 명문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다사지(水多寺址)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1987년 청동 반자 1점과 청동 촛대 받침 1점이 발견되었고, 청동촛대 명문에서도‘수다사’라는 원래 사찰명이 확인되었기에 "수항리 사지"란 옛 이름대로 "수다사"라 다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은 산 밑의 배사지(背斜地)에 위치하나 수항리 사지 터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한강 지류천인 오대천을 끼고 도는 박지산 아래의 둔치인 약 만 평 정도의 넓은 밭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 폐사지의 절터를 본다면 먼저 왜 이런 장소를 선택하였슬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가설적 설명으로 이해해 본다면 자장율사가 월정사에서 정선 장암사를 오갈 때 어느날 날이 저물어 이곳 개천가에 노숙하며 제자들에게 설법하던 자리라고 픽션의 스토리를 가정해 본다면, 이곳에서 자장의 설법에 크게 깨달음을 득한 제자가 후일 스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암자를 짓고 하는,,,이러한 픽션으로서라도 이해를 해 본다.
그 옛날에 신라 불교는 지배계층에 의한 도시적 사찰이었지만, 평민사상의 선종이 수입되며 기득권 층의 지배계급에 도전으로 교종의 와해란 점에서 기득세력에 의해서 선종은 이단으로 취급되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기에 꼭 산속에만 자리 잡아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이 사찰은 빈대가 많아서 불태웠다는 소문들이 입에 오르내리지만, 아마 폐사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수해 대상지역인 듯하다. 오대천이 굽어도는 계곡의 어느 밭 가장자리의 위치하는 동 사찰은 아래의 사진에서 보면 근간에도 장마가 범람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발 1,500~1,300m의 오대산,백석산,수타산등에 들러쌓인 박지산 아래의 수항사지는 강원도 고산지대엔 구름도 산등성에
걸려서 국지성 소나기를 퍼붓고, 오대천의 소하천은 삽시간에 범람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폐사가 된지 500년 정도라면 남아난 물건은 없슬 듯도 하지만 석탑과 주춧돌, 비석등의 석물은 조금 파손되어도 그 잔해는 남아 있어야 하는데, 수항사지에도 얼마전 까지 난간대 뒤로 파손된 석물들이 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어디선가 주워 옮겨논 옥개석 한장, 면석 한장, 그리고 당간지주라 하지만, 아직 정확하지는 못한 석조물 등이 탑 옆으로 어디선가 다시 옮겨져 있으며, 나머지 석물 잔해들은 뚝방에 버려진 듯 하다.
천년 전의 황룡사도, 어느 이름 모를 폐사지에도 주춧돌은 남아 있는데, 이 수항사지 터는 개인소유라 농토의 개간에 의해 본 사찰은 주춧돌도 파딩기고 감자밭으로 사용하기에, 이 수항사지는 절터의 가람배치가 얼마한 규모인지 알 수도 없다.
( 본 게시판은 사진이 2매만 올릴 수 잇어 사진을 못 올림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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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일반적으로 탑의 조성시엔 아래 흙을 파고 단단한 층으로 다지기나 아니면 빋침돌을 다지지만 평지보다
흙을 높이지는 않는다.이 사진에서 밭의 평탄작업을 하여 탑 주위만 나두고 파 내려가서 올라간 탑
난간석에 돌무더기로 쌓은 것보다는 무져진 사진이다.
*우상> 아 사진에 강물의 범람이 난간석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좌하> 강의 둔치 위의 복판에 탑이 보인다.
이곳은 양택의 주거공간으론 부적격한 듯하다. 왜냐면 강물이 굽어도는 안쪽 코너에 자리잡는 둔치로
범람 시에는 강물은 굽어 돌지만, 강을 넘어선 위로 범람한 물은 바닥과 같이 굽어 도는 게 아니라 직선코스로
꺾어지기 않고 강한 여울을 만들고, 이 급류의 물살을 막는 구조물인 집의 건축물들은 곧바로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러한 장소에 사찰을 왜 지었슬까?? 스님들의 택지에 대한 안목과 혜안이 없어서였슬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길래, 이 문제의 이해로는 위에 자장율사의 하룻밤 노숙과 후일 그의 제자들이 여타 침수등 제반문제를
가리기 전에 여기서 이런 사행천의 옆에 암자나 사찰은 지은 것에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하> 오대천 둔치 아래로 버려진 폐사지의 유물들 잔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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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사지에 단 하나 남은 유물인 탑도 그 양식의 원형을 찾아보기란 어쩜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지 모를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3층 탑이라니, 5층 탑이라 하는 등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쩜 요행히 층수를 맞출 수는 있지만, 그 모두 정확한 파악에서 구한 답은 아니란 것이다.
일전 나로서는 아래의 사진에서 본 것으로 이는 옥개석만 쌓아 올리면 13층 탑이라야 하는 것이란 가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본 블로그를 다시 뒤척거다 보니 새로운 사진이 올라 있었다.
이번에는 탑 주변의 잡초를 제거키 위해 자갈을 깔았고 또한 한기의 옥개석과 탑신석도 어디선가 나란히 가져다 놓은 사진이 올라있었다. 이러한 정비의 작업은 관할 문화재 당국에서 작업한 것은 아니고 마을에서 한 것 같은 느낌이며, 면석 한점으로 인해서 나의 일전 13층 탑의 가설도, 아니면 3층이나 5층이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모두 원점으로 돌려서 다시금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 보는 탑은 언젠가 무너진 탑을 다시 쌓아 올린 것이라 하는데,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정확한 고증도 없이, 깨지고 균열이 간 탑돌은 모두 버렸고 탑신도 없는 옥개석만 올린 것으로 동 탑은 학술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도 없고, 당국은 너무나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케이스에 관리자들은 이럴 경우 대게들 예산이 부족하여 하고 핑계를 잡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이 후세가 답을 보태죠. "예산이 미처 돌지 못하니,,,옛날이 그립군요."
" 40여 년 전 '70년대엔 지금보다 예산이 풍부하여 이 난간석을 설치했지요???""
지방 문화재가 사유지 내에 있다고, 그 잔해라도 민간인이 마음대로 치워버린다면 규제해야 당연하지요??
그런데, 제 놈 직무유기를 예산이 모자라는 가난뱅이 국가라고 쌩 거짓말을 할 테죠??
위 2층의 옥개석만 쌓인 탑의 사진을 보노라면 2 중 기단의 갑석 위의 괴임석에는 연꽃 무늬도 새기며 비례균형감각이 어쩌면 전형적인 탑 양식의 아카데미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 심플하면서도 모던스럽고 현대 감각적고도 고즈넉한 감흥을 일으킨다.
그런데 아래의 사진을 보면 어느 면에서는 균형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동 탑이 무너지고 흐트러진 재료들을 다시 쌓아 올렸다는 기록에, 이때 2단의 상지 갑석의 수평이 일그러져 있으며 <맨 위의 사진>, 상단 갑석은 위의 사진처럼 제 짝이 아닌 듯 모자라는 부분도 있고 4면중 한 면에선 수평을 못 맞춰 갑석이 들떠있다.
회화는 단면의 평면에서 작용이지만 조각은 입체로 4면도 아닌 위, 아래까지 어느 방향에서도 정확히 맞아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전문가가 쌓아 올린 것은 아닌것이다.
상지갑석 상판은 다른 사진에서 자세히 봐도 부러져 나간 것이 아니라 원래 조각이 짧은 평면석인데, 이 판의 다른 변은 제 사이즈에 맞는다면 이곳 이외엔 다른곳엔 갈 데도 없는 평판석인데, 그것은 좀 의문이다.
아래 사진은 후일 언젠가는 무너질 것 같은 느낌으로, 두개의 갑석이 수직선상에 나란하지 못하고 경사로 일그러져 있다.
한쪽이 무거워 쏠리면 다른쪽의 통돌이 아닌 1/2의 기단이 놀게 되고 무게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갑석의 기능적 의미란 이 쏠림의 무게 편중을 전체적으로 분산하자는 느낌도 가지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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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항사지 탑의 분석이해>
위에서 전체적인 개요와 느낌을 이해하였고으며, 아래에선 그럼 과연 몇 층탑이었슬까 하는 의문을 추리해 보자.
<가상의 3층탑 이미지> <가상의 5층탑 이미지>
* 가상의 3층탑과 5층탑은 링크 맨 위에 시물레이션 사진을 게제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수항리 사지 탑의 임의의 이미지로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탑신부와 1층 옥개석, 2층 옥개석, 복발을 그대로 분할하여 사용하였다.
그래서, 아래의 기단과 1, 2층 옥개석및 1층 탑신석, 노반은 확대, 축소등이 한 장에서 이루어졌기에 가상의 이미지 작업은 옥개석, 탑신석이 동일한 값의 비례로 구성하였기에 옥개석과 탑신의 비례관계는 잃어버린 원작의 모습과 큰 오차는 없슬 듯하다.
1) 가상적 이미지 탑의 감상과 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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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이란 아름다운 美를 도출을 위한 노력의 전체적 평가이기에 동 탑의 제 값을 구하기 이전에 이미지화 탑의 감상부터 해보자.
왼쪽의 가상의 3층 석탑은 탑신부가 기단부와 1: 1 정도의 사이즈로 기단부에 비해서 탑신부가 왜소하게 보인다.또한 3 층 옥개석의 윗면이 노반에 넓음을 느낄 수 있다.
동 탑의 특징은 각 층의 기단석은 넓게 짜여있어 몸통은 넓어 안정적이지만, 그 위의 옥개석의 처마 폭은 일반적인 탑의 모양만큼 돌출되지는 않아 마치 낙수 면이 몸통에 귀가 달린 듯 짧은 전각탑 모양을 하고 있다.
하단부의 조각수법은 중출한데 미적인 감각을 상실했을 것인가??
주는 탑신부와 기단은 탑신의 하부구조이기에 그렇지는 않으리란 생각이다.
3층이나 5층의 이미지 탑에서 보면 모두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흡족할만한 탑이 안된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옥개석 크기를 키워서 작업할 수는 없다. 다만 사진에서 보는 탑의 비례함수가 같게 나타내야 기존의 탑의 부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지 그래픽화엔 정면도 치수의 그래픽으로 옥개석의 아랫부분이 보인다면 시각적으로 좀 더 두터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장에서 동 탑이 몇 층이요 하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추정 가능치까지만 예측할 것이다.
몇 층인가의 정답은 다음 몇 가지 현장 확인절차와 실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탑을 다시 쌓은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하여야 그 소명 가치가 정확치 못할 것이고 또한 심리적 부담에 답이 없슬듯 하다.
현장 확인시 동 탑의 실측이 필요한 것이고, 이로써 2층 옥개석이 정확한가의 답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옥개석이 크기가 작도상 3층에 들어맞는지 4층 이상이라야 하는지 등을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올려진 노반을 들고 아래의 2층 옥개석에도 찰주의 구멍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육안으로 2층 것이라 판단하기엔 금물이다. 왜냐면 동 탑의 특성은 3층 탑에서 흔히 쓰는 수법으로 1층 기단석은 조금 길쭉하나 바닥에 내려진 기단석의 높이는 옥개석 높이와 비슷하게 작기 때문에 각 층의 옥개석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3층탑들은 대개 기울기가 13도 정도인데, 지금 이 이미지의 3층탑은 15도를 넘는다. 즉 1층 옥개석보다 3층 옥개석의 일반적 비율보다 작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지 5층탑의 경우에도 기울기 값이 10도 정도이다. 다층탑의 경우, 월정사 탑을 예로 들면 옥개석 임의 사선 기울기 값이 7도이다. 그럼 이 경우도 올라갈수록 현저히 작아졌다는 점이다.
혹시나 이 문제 해결에 바닥에 있는 옥개석이 2층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것은 크기를 재어보면 당장 답을 구하는 것이다.
바닥에 있는 옥개석이 2층의 옥개석보다 더 크다면 기울기 값은 작아지고 그래서 탑의 일반률 경사 값을 따라갈 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바닥에 놓였는 옥개석은 찰주 구멍이 있다.
이로서 동 탑은 상륜부가 약식의 석조물 노반. 복발, 양화 , 보주만 장식하는 약식처리가 아니라 철재의 찰주에 보개및 아래는 용차등 격식을 갖춘 듯 하다
그러면 이 찰주가 탑신부에 지지하기 위해서는 월정사 8각9층 석탑을 예로 들면 9층 옥개석, 탑신석과 8층 옥개석에 구멍을 뚫고 찰주를 꼽았다.
수항리 사지탑은 작다고 9층에만 찰주를 꼽을 수는 없다. 찰주는 무게감을 지탱해야 하는데 그 무게란 윗층 옥개석에서고정하지만 아래층 옥개석에선 찰주의 기우는 것을 잡아주는 역할도 필요한 것이다.
바닥에 놓여진 옥개석에 찰주를 끼우는 구멍이 있는데 이럴 경우 딱 두가지의 경우의 수가 발생된다.
그 하나는 3층 탑의 경우이다. 동 탑이 찰주를 꼽은 탑으로 그 구멍은 바닥에 놓여진 옥개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동탑 위에 얹혀진 노반도 그 구멍이 관통돼 있어야 하지만 그 노반을 들고 볼때 2층(현재 보이는 2층) 옥개석도 구멍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옥개석 두개에 구멍이 나 있으면 이는 어김없이 3층 석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바닥에 놓여있는 탑신석은 찰주 구멍이 없으므로 3층이 아닌 2층 탑신석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경우의 수는 5층탑이란 점이다.
이 경우를 충족하자면 현재 2층 옥개석에 구멍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진 옥개석은 4층이나 5층 옥개석이 되어야 하고 현 2층의 옥개석은 2~3층의 옥개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 2층 옥개석이 구멍이 없고 3층 것이라면 2층의 옥개석은 상,하 옥개석의 비율에 맞게 다시 제작되어야 하고 이때 5층탑이 되지만, 이 탑은 현 이미지보다 체감비율이 낮아 보이기에 7층 탑도 가능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이 현장 확인하면 동 탑의 원작 당시의 층수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혹 현장답사 하실 분이 필요하다면 밭 주인과 유관부처의 전화번호를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탑보다 밭을 더 중히 여기는 밭 주인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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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의 일반적 이해>
* 체감율과 기울기 값이란??
일반적으로 쓰는 탑의 체감율이란 탑을 대각선 45도 방향에서 양쪽 옥개석 양각까지 거리의 합에 의한 비례로 경사도를 높여 체감율을 높게하는 경향이지만....
나의 이야기에서 탑의 기울기 값이란 탑을 한 면의 정면에서 볼때 옥개석 양각의 끝은 위층과 아래층 등 모두가 일선상의 임의 좌표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야 수작인데 , 이 기울기의 일반적인 단순 확인인 것이다.
체감울이란 옥개석 대각선의 면과 면이 만나는 지점이라 피타고라스가 정리한 삼각함수의 루트값까지 적용하여야 하는 것으로 탑을 45도 대각에서 측정하여야 정확한 수치가 나오는 것인데 육안으로 관측은 정확한 45도일까?? 그래서 이것은 도면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우리네 집은 건축 설계도에 벽돌 한장도 계산되 있지만 국보급 문화재의 탑들까지도 그러한 수치 값은 없다.
* 탑의 양식의 세부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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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석가모니로서 그 대상체에 공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월정사탑 앞에는 공양자의 대상체까지도 조각되어 있는데, 탑이란 하나의 이상적 불교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탑의 각 부들은 불교적 의미와 뜻을 가진다.
3층 탑이고 5,7,9,11,13층 탑으로 홀수층으로 이루어 지는데 모든 탑들의 최고의 이상향이란 13층으로, 이것도 불교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석탑이고 목탑도 현실적 제약에서 3층과 5층 탑들이 대종을 이루는 것이다.
상륜은 13층이 일반적이므로 십삼천(十三天)이라고 부르는데, 불교에서 13의 의미는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아우르는 숫자이다.
평면적 방위를 표현하는 8방과 하늘과 땅인 천지의 2를 더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더한 숫자가 13이 되는 것이다.
즉, 시방삼세(十方三世)를 표현한 숫자이며, 원대에 조성된 탑의 층수가 유난히 13층이 많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상륜부 위의 탑찰은 부처님의 머리 부분을 상징하고 있어서 해와 달, 보주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찰주란 원기둥 모양의 중심을 뚫고 세우는 기둥으로 찰주에 꿰어져 있는 보륜은 보륜은 九輪이라고도 함하며 天界를 상징하며, 아홉개가 격식에 맞는 논리적이지만 조각 구조상 월정사 탑도 대부분 다섯개나 세개로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 감은사 3층 석탑엔 상륜부 장식이 없이 원기둥 모양의 찰주가 중심 기둥. 꼭대기 장식의 중심을 뚫고 세워져 있다.
그 탑을 보노라면 어쩜 사각의 장대한 탑의 균형과 찰주의 인상은 도도함을 불러 일으키지만, 찰주로만 마감되었었다면 그것은 양식, 즉 불교 교리의 이상에 위배되는 것이다.
석가탑에도 찰주가 훼손되어 현대의 중창공사에 남원의 실상사탑의 보륜을 모델로 다시금 조각한 것이라 하는데, 감은사 탑은 부분적인 파손이 아니라 모두 파손되었기에 찰주만 그대로 있는 것이라야 논리에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탑이란 부처님의 세계로 각 부분의 의미를 새기며 탑의 모든 내용은 그 자체가 공양의 대상체이자 하나의 불교 이상을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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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장의 논제의 사진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아래에 저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kkks1/1148
감사합니다.
그점 양지하시고
맨 위의 사진은 수항사지 3층석탑의 가상적 시물레이션입니다
아래 사진은 수항사지탑을 5층으로 하였슬때의 가상적 사진입니다.
< 태백곡수다사 탑에대한 나의 해석 >
후세백작 2015.10.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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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항리 사지 탑의 이해>
삼국유사에서 자장율사와 월정사에 주석한 신효, 신의 및 유연스님이 이곳 수다사에 거처했으며, 원주의 폐사지인 법천사지의 지광국사 부도비에 따르면 지광국사 혜린은 이곳에 10년간 주지를 역임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엔 7세기 초반부터 단종 2년(1432)경까지 기록되었으나 "동국여지승람"엔 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15세기경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수항리 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49호로 자장율사의 행적에 깊이 관련 있는 역사적 사찰로 이곳 지역명에 따라서 "수항리 사지"로 명명되었으나, 1984년에‘태백곡수다사"(太白谷水多寺)라 각자 된 명문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다사지(水多寺址)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1987년 청동 반자 1점과 청동 촛대 받침 1점이 발견되었고, 청동촛대 명문에서도‘수다사’라는 원래 사찰명이 확인되었기에 "수항리 사지"란 옛 이름대로 "수다사"라 다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은 산 밑의 배사지(背斜地)에 위치하나 수항리 사지 터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한강 지류천인 오대천을 끼고 도는 박지산 아래의 둔치인 약 만 평 정도의 넓은 밭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 폐사지의 절터를 본다면 먼저 왜 이런 장소를 선택하였슬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가설적 설명으로 이해해 본다면 자장율사가 월정사에서 정선 장암사를 오갈 때 어느날 날이 저물어 이곳 개천가에 노숙하며 제자들에게 설법하던 자리라고 픽션의 스토리를 가정해 본다면, 이곳에서 자장의 설법에 크게 깨달음을 득한 제자가 후일 스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암자를 짓고 하는,,,이러한 픽션으로서라도 이해를 해 본다.
그 옛날에 신라 불교는 지배계층에 의한 도시적 사찰이었지만, 평민사상의 선종이 수입되며 기득권 층의 지배계급에 도전으로 교종의 와해란 점에서 기득세력에 의해서 선종은 이단으로 취급되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기에 꼭 산속에만 자리 잡아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이 사찰은 빈대가 많아서 불태웠다는 소문들이 입에 오르내리지만, 아마 폐사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수해 대상지역인 듯하다. 오대천이 굽어도는 계곡의 어느 밭 가장자리의 위치하는 동 사찰은 아래의 사진에서 보면 근간에도 장마가 범람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발 1,500~1,300m의 오대산,백석산,수타산등에 들러쌓인 박지산 아래의 수항사지는 강원도 고산지대엔 구름도 산등성에
걸려서 국지성 소나기를 퍼붓고, 오대천의 소하천은 삽시간에 범람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폐사가 된지 500년 정도라면 남아난 물건은 없슬 듯도 하지만 석탑과 주춧돌, 비석등의 석물은 조금 파손되어도 그 잔해는 남아 있어야 하는데, 수항사지에도 얼마전 까지 난간대 뒤로 파손된 석물들이 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어디선가 주워 옮겨논 옥개석 한장, 면석 한장, 그리고 당간지주라 하지만, 아직 정확하지는 못한 석조물 등이 탑 옆으로 어디선가 다시 옮겨져 있으며, 나머지 석물 잔해들은 뚝방에 버려진 듯 하다.
천년 전의 황룡사도, 어느 이름 모를 폐사지에도 주춧돌은 남아 있는데, 이 수항사지 터는 개인소유라 농토의 개간에 의해 본 사찰은 주춧돌도 파딩기고 감자밭으로 사용하기에, 이 수항사지는 절터의 가람배치가 얼마한 규모인지 알 수도 없다.
( 본 게시판은 사진이 2매만 올릴 수 잇어 사진을 못 올림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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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일반적으로 탑의 조성시엔 아래 흙을 파고 단단한 층으로 다지기나 아니면 빋침돌을 다지지만 평지보다
흙을 높이지는 않는다.이 사진에서 밭의 평탄작업을 하여 탑 주위만 나두고 파 내려가서 올라간 탑
난간석에 돌무더기로 쌓은 것보다는 무져진 사진이다.
*우상> 아 사진에 강물의 범람이 난간석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좌하> 강의 둔치 위의 복판에 탑이 보인다.
이곳은 양택의 주거공간으론 부적격한 듯하다. 왜냐면 강물이 굽어도는 안쪽 코너에 자리잡는 둔치로
범람 시에는 강물은 굽어 돌지만, 강을 넘어선 위로 범람한 물은 바닥과 같이 굽어 도는 게 아니라 직선코스로
꺾어지기 않고 강한 여울을 만들고, 이 급류의 물살을 막는 구조물인 집의 건축물들은 곧바로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러한 장소에 사찰을 왜 지었슬까?? 스님들의 택지에 대한 안목과 혜안이 없어서였슬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길래, 이 문제의 이해로는 위에 자장율사의 하룻밤 노숙과 후일 그의 제자들이 여타 침수등 제반문제를
가리기 전에 여기서 이런 사행천의 옆에 암자나 사찰은 지은 것에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하> 오대천 둔치 아래로 버려진 폐사지의 유물들 잔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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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사지에 단 하나 남은 유물인 탑도 그 양식의 원형을 찾아보기란 어쩜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지 모를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3층 탑이라니, 5층 탑이라 하는 등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쩜 요행히 층수를 맞출 수는 있지만, 그 모두 정확한 파악에서 구한 답은 아니란 것이다.
일전 나로서는 아래의 사진에서 본 것으로 이는 옥개석만 쌓아 올리면 13층 탑이라야 하는 것이란 가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본 블로그를 다시 뒤척거다 보니 새로운 사진이 올라 있었다.
이번에는 탑 주변의 잡초를 제거키 위해 자갈을 깔았고 또한 한기의 옥개석과 탑신석도 어디선가 나란히 가져다 놓은 사진이 올라있었다. 이러한 정비의 작업은 관할 문화재 당국에서 작업한 것은 아니고 마을에서 한 것 같은 느낌이며, 면석 한점으로 인해서 나의 일전 13층 탑의 가설도, 아니면 3층이나 5층이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모두 원점으로 돌려서 다시금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 보는 탑은 언젠가 무너진 탑을 다시 쌓아 올린 것이라 하는데,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정확한 고증도 없이, 깨지고 균열이 간 탑돌은 모두 버렸고 탑신도 없는 옥개석만 올린 것으로 동 탑은 학술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도 없고, 당국은 너무나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케이스에 관리자들은 이럴 경우 대게들 예산이 부족하여 하고 핑계를 잡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이 후세가 답을 보태죠. "예산이 미처 돌지 못하니,,,옛날이 그립군요."
" 40여 년 전 '70년대엔 지금보다 예산이 풍부하여 이 난간석을 설치했지요???""
지방 문화재가 사유지 내에 있다고, 그 잔해라도 민간인이 마음대로 치워버린다면 규제해야 당연하지요??
그런데, 제 놈 직무유기를 예산이 모자라는 가난뱅이 국가라고 쌩 거짓말을 할 테죠??
위 2층의 옥개석만 쌓인 탑의 사진을 보노라면 2 중 기단의 갑석 위의 괴임석에는 연꽃 무늬도 새기며 비례균형감각이 어쩌면 전형적인 탑 양식의 아카데미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 심플하면서도 모던스럽고 현대 감각적고도 고즈넉한 감흥을 일으킨다.
그런데 아래의 사진을 보면 어느 면에서는 균형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동 탑이 무너지고 흐트러진 재료들을 다시 쌓아 올렸다는 기록에, 이때 2단의 상지 갑석의 수평이 일그러져 있으며 <맨 위의 사진>, 상단 갑석은 위의 사진처럼 제 짝이 아닌 듯 모자라는 부분도 있고 4면중 한 면에선 수평을 못 맞춰 갑석이 들떠있다.
회화는 단면의 평면에서 작용이지만 조각은 입체로 4면도 아닌 위, 아래까지 어느 방향에서도 정확히 맞아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전문가가 쌓아 올린 것은 아닌것이다.
상지갑석 상판은 다른 사진에서 자세히 봐도 부러져 나간 것이 아니라 원래 조각이 짧은 평면석인데, 이 판의 다른 변은 제 사이즈에 맞는다면 이곳 이외엔 다른곳엔 갈 데도 없는 평판석인데, 그것은 좀 의문이다.
아래 사진은 후일 언젠가는 무너질 것 같은 느낌으로, 두개의 갑석이 수직선상에 나란하지 못하고 경사로 일그러져 있다.
한쪽이 무거워 쏠리면 다른쪽의 통돌이 아닌 1/2의 기단이 놀게 되고 무게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갑석의 기능적 의미란 이 쏠림의 무게 편중을 전체적으로 분산하자는 느낌도 가지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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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항사지 탑의 분석이해>
위에서 전체적인 개요와 느낌을 이해하였고으며, 아래에선 그럼 과연 몇 층탑이었슬까 하는 의문을 추리해 보자.
<가상의 3층탑 이미지> <가상의 5층탑 이미지>
* 가상의 3층탑과 5층탑은 링크 맨 위에 시물레이션 사진을 게제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수항리 사지 탑의 임의의 이미지로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탑신부와 1층 옥개석, 2층 옥개석, 복발을 그대로 분할하여 사용하였다.
그래서, 아래의 기단과 1, 2층 옥개석및 1층 탑신석, 노반은 확대, 축소등이 한 장에서 이루어졌기에 가상의 이미지 작업은 옥개석, 탑신석이 동일한 값의 비례로 구성하였기에 옥개석과 탑신의 비례관계는 잃어버린 원작의 모습과 큰 오차는 없슬 듯하다.
1) 가상적 이미지 탑의 감상과 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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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이란 아름다운 美를 도출을 위한 노력의 전체적 평가이기에 동 탑의 제 값을 구하기 이전에 이미지화 탑의 감상부터 해보자.
왼쪽의 가상의 3층 석탑은 탑신부가 기단부와 1: 1 정도의 사이즈로 기단부에 비해서 탑신부가 왜소하게 보인다.또한 3 층 옥개석의 윗면이 노반에 넓음을 느낄 수 있다.
동 탑의 특징은 각 층의 기단석은 넓게 짜여있어 몸통은 넓어 안정적이지만, 그 위의 옥개석의 처마 폭은 일반적인 탑의 모양만큼 돌출되지는 않아 마치 낙수 면이 몸통에 귀가 달린 듯 짧은 전각탑 모양을 하고 있다.
하단부의 조각수법은 중출한데 미적인 감각을 상실했을 것인가??
주는 탑신부와 기단은 탑신의 하부구조이기에 그렇지는 않으리란 생각이다.
3층이나 5층의 이미지 탑에서 보면 모두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흡족할만한 탑이 안된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옥개석 크기를 키워서 작업할 수는 없다. 다만 사진에서 보는 탑의 비례함수가 같게 나타내야 기존의 탑의 부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지 그래픽화엔 정면도 치수의 그래픽으로 옥개석의 아랫부분이 보인다면 시각적으로 좀 더 두터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장에서 동 탑이 몇 층이요 하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추정 가능치까지만 예측할 것이다.
몇 층인가의 정답은 다음 몇 가지 현장 확인절차와 실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탑을 다시 쌓은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하여야 그 소명 가치가 정확치 못할 것이고 또한 심리적 부담에 답이 없슬듯 하다.
현장 확인시 동 탑의 실측이 필요한 것이고, 이로써 2층 옥개석이 정확한가의 답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옥개석이 크기가 작도상 3층에 들어맞는지 4층 이상이라야 하는지 등을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올려진 노반을 들고 아래의 2층 옥개석에도 찰주의 구멍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육안으로 2층 것이라 판단하기엔 금물이다. 왜냐면 동 탑의 특성은 3층 탑에서 흔히 쓰는 수법으로 1층 기단석은 조금 길쭉하나 바닥에 내려진 기단석의 높이는 옥개석 높이와 비슷하게 작기 때문에 각 층의 옥개석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3층탑들은 대개 기울기가 13도 정도인데, 지금 이 이미지의 3층탑은 15도를 넘는다. 즉 1층 옥개석보다 3층 옥개석의 일반적 비율보다 작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지 5층탑의 경우에도 기울기 값이 10도 정도이다. 다층탑의 경우, 월정사 탑을 예로 들면 옥개석 임의 사선 기울기 값이 7도이다. 그럼 이 경우도 올라갈수록 현저히 작아졌다는 점이다.
혹시나 이 문제 해결에 바닥에 있는 옥개석이 2층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것은 크기를 재어보면 당장 답을 구하는 것이다.
바닥에 있는 옥개석이 2층의 옥개석보다 더 크다면 기울기 값은 작아지고 그래서 탑의 일반률 경사 값을 따라갈 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바닥에 놓였는 옥개석은 찰주 구멍이 있다.
이로서 동 탑은 상륜부가 약식의 석조물 노반. 복발, 양화 , 보주만 장식하는 약식처리가 아니라 철재의 찰주에 보개및 아래는 용차등 격식을 갖춘 듯 하다
그러면 이 찰주가 탑신부에 지지하기 위해서는 월정사 8각9층 석탑을 예로 들면 9층 옥개석, 탑신석과 8층 옥개석에 구멍을 뚫고 찰주를 꼽았다.
수항리 사지탑은 작다고 9층에만 찰주를 꼽을 수는 없다. 찰주는 무게감을 지탱해야 하는데 그 무게란 윗층 옥개석에서고정하지만 아래층 옥개석에선 찰주의 기우는 것을 잡아주는 역할도 필요한 것이다.
바닥에 놓여진 옥개석에 찰주를 끼우는 구멍이 있는데 이럴 경우 딱 두가지의 경우의 수가 발생된다.
그 하나는 3층 탑의 경우이다. 동 탑이 찰주를 꼽은 탑으로 그 구멍은 바닥에 놓여진 옥개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동탑 위에 얹혀진 노반도 그 구멍이 관통돼 있어야 하지만 그 노반을 들고 볼때 2층(현재 보이는 2층) 옥개석도 구멍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옥개석 두개에 구멍이 나 있으면 이는 어김없이 3층 석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바닥에 놓여있는 탑신석은 찰주 구멍이 없으므로 3층이 아닌 2층 탑신석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경우의 수는 5층탑이란 점이다.
이 경우를 충족하자면 현재 2층 옥개석에 구멍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진 옥개석은 4층이나 5층 옥개석이 되어야 하고 현 2층의 옥개석은 2~3층의 옥개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 2층 옥개석이 구멍이 없고 3층 것이라면 2층의 옥개석은 상,하 옥개석의 비율에 맞게 다시 제작되어야 하고 이때 5층탑이 되지만, 이 탑은 현 이미지보다 체감비율이 낮아 보이기에 7층 탑도 가능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이 현장 확인하면 동 탑의 원작 당시의 층수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혹 현장답사 하실 분이 필요하다면 밭 주인과 유관부처의 전화번호를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탑보다 밭을 더 중히 여기는 밭 주인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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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의 일반적 이해>
* 체감율과 기울기 값이란??
일반적으로 쓰는 탑의 체감율이란 탑을 대각선 45도 방향에서 양쪽 옥개석 양각까지 거리의 합에 의한 비례로 경사도를 높여 체감율을 높게하는 경향이지만....
나의 이야기에서 탑의 기울기 값이란 탑을 한 면의 정면에서 볼때 옥개석 양각의 끝은 위층과 아래층 등 모두가 일선상의 임의 좌표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야 수작인데 , 이 기울기의 일반적인 단순 확인인 것이다.
체감울이란 옥개석 대각선의 면과 면이 만나는 지점이라 피타고라스가 정리한 삼각함수의 루트값까지 적용하여야 하는 것으로 탑을 45도 대각에서 측정하여야 정확한 수치가 나오는 것인데 육안으로 관측은 정확한 45도일까?? 그래서 이것은 도면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우리네 집은 건축 설계도에 벽돌 한장도 계산되 있지만 국보급 문화재의 탑들까지도 그러한 수치 값은 없다.
* 탑의 양식의 세부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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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석가모니로서 그 대상체에 공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월정사탑 앞에는 공양자의 대상체까지도 조각되어 있는데, 탑이란 하나의 이상적 불교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탑의 각 부들은 불교적 의미와 뜻을 가진다.
3층 탑이고 5,7,9,11,13층 탑으로 홀수층으로 이루어 지는데 모든 탑들의 최고의 이상향이란 13층으로, 이것도 불교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석탑이고 목탑도 현실적 제약에서 3층과 5층 탑들이 대종을 이루는 것이다.
상륜은 13층이 일반적이므로 십삼천(十三天)이라고 부르는데, 불교에서 13의 의미는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을 아우르는 숫자이다.
평면적 방위를 표현하는 8방과 하늘과 땅인 천지의 2를 더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더한 숫자가 13이 되는 것이다.
즉, 시방삼세(十方三世)를 표현한 숫자이며, 원대에 조성된 탑의 층수가 유난히 13층이 많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상륜부 위의 탑찰은 부처님의 머리 부분을 상징하고 있어서 해와 달, 보주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찰주란 원기둥 모양의 중심을 뚫고 세우는 기둥으로 찰주에 꿰어져 있는 보륜은 보륜은 九輪이라고도 함하며 天界를 상징하며, 아홉개가 격식에 맞는 논리적이지만 조각 구조상 월정사 탑도 대부분 다섯개나 세개로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 감은사 3층 석탑엔 상륜부 장식이 없이 원기둥 모양의 찰주가 중심 기둥. 꼭대기 장식의 중심을 뚫고 세워져 있다.
그 탑을 보노라면 어쩜 사각의 장대한 탑의 균형과 찰주의 인상은 도도함을 불러 일으키지만, 찰주로만 마감되었었다면 그것은 양식, 즉 불교 교리의 이상에 위배되는 것이다.
석가탑에도 찰주가 훼손되어 현대의 중창공사에 남원의 실상사탑의 보륜을 모델로 다시금 조각한 것이라 하는데, 감은사 탑은 부분적인 파손이 아니라 모두 파손되었기에 찰주만 그대로 있는 것이라야 논리에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탑이란 부처님의 세계로 각 부분의 의미를 새기며 탑의 모든 내용은 그 자체가 공양의 대상체이자 하나의 불교 이상을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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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장의 논제의 사진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아래에 저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kkks1/114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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