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비젼 제시!! (민족의 힘!! 평창 고조선 문화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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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후세백작 작성일16-09-18 21:04 조회3,391회 댓글1건본문
후세백작 2016.09.18 20:35
지금 평창인들앞에 놓인 "평창하리 고조선인 유적은 우리 모든 국민의 정신적 고향, 역사의 태동의 고조선인의
유골이 발굴되며, 평창은 국내 유일의 고조선 박물관"을 건립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비파형 청동검은 우리나라에서는 약 40여개 발견되었지만 고조선인의 유골은 단 한사람으로 아직 미 발표분이지만
신장은 167센티정도로 피장자는 그 시대엔 장신으로 이번 평창 하리 청동기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골의 DNA검사에 의한 정보는 개인적 신상은 물론 나아가 식생활과 그에따른 농경사회나 기후등 수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서 고조선 사회상이 파악되고 3D 시물레이션으로 마치 쥬라기 공용들을 그려보듯
평창인 유골과 평창의 자연환경이 그 기준이 되는 고조선 사회의 영상물도 제작될 것입니다.
또한 세계 인류역사에도 인용될 한 척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여타 청동기 유물이나 비파형 청동검 출토의
고인돌 유적과는 차별화된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조선 이야기에 기준이 평창 하리유적의 피장자 유골에 의한 것으로서 평창이 고조선 역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래사 이러한 영상매체의 과학적 시스템의 박물관이 건립한다면 이것은 지역 축제의 장을 넘어서는 우리민족의
정통성의 수호라는 범 민족사적 역사의 장으로 부상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평창인들은 이러한 우리지역 선대인의 유골을 모시고 제를 지냄도 당연한 귀결입니다.
요즘 각 지역은 새 발자국 하나 가지고도 지역축제를 개최하지만 그러한 작은 궤를 넘어서서 평창은 단군왕검이
하늘을 여신 개천절에 평창하리 고조선 유적의 고조선인을 모시고 평창지역 후대인으로서 제를 지냄도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러한 고조선 정보를 토대로 역사의 장의 테마를 시작한다면 모든 국민이 지향하는 범 국가적 행사로
발전되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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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 민족의 힘 !! 가자 !! 평창으로,, 고조선 문화축전!!"" 이러한 슬로건에 고조선 문화 축제의 만드심
또한 좋치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평창 선, 후배님 모두 손모아 같이 노력을 경주한다면 분명 평창의 민족의 모태로서 그 위상은 높이 올라갈
것임에 국가가 무엇을 하기 이전에 우리 지역 주민이 먼저 우리의 것을 인식하고 갖추어야 올바르기에 평창인들
모두 같이 손 잡고 노력을 경주하자는 제안에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 평창인은 이제 지역적 페스티벌을 넘어서는 범 국가적 역사앞에서 위대한 고조선의 역사를 선 보이는
새로운 문화 창출의 기수가 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 후세백작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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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백작님의 댓글
후세백작 작성일
[청동기 유골을 고조선인이라 표현한 이유서]
후세백작 2016.09.22 13:44
이 유적에 대하여 문화재이지만 그 등급과 현장보존인지 이전등의 심의가 내일 열린다.
청동기 시대 유골이 함께 출토된 점이나 또한 매장지가 장군총이나 이러한 시기보다 7-800년 이전인듯 한 점과
역사에서 이 묘는 죽어서도 영원불멸한다는 순장제 이전의 묘이기에 청동검도 반 뿌려뜨렸던 것이다.
또한 14기 묘중 대다수사 50센티 정도의 구덩이인데 이는 어떤 매장법인지 파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심의에서 유물 이전과 출토지 복귀가 아닌 출토지 670평의 보존명령이 떨어지고 출토품 현장보존 심의가
떨어지길 바란다.
얼마전 신라 석실 한기가 시루목 중게소 아래 밭에서 확인되고 철망에 좌물쇠까지 채워 보존한다는데, 하리
청동기 유적은 그보다 상한대이고 매장 문화도 연구할 가치가 있슬 것이다.
그런데 복귀명령에 땅 주인이 집을 지은다면,,,,아마도 700여평 매입할 돈 걱정은 아닐까??
그리고 나의 글에 청동기시대인을 고조선인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역사에서 고조선의 실체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기에 모호한 점도 있다.
하지만 이 청동검은 라오닝식, 또한 고조선식 비파형 청동검이다.
과연 이곳이 고조선 영토였는가 하는 점은 역사에서 증명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매장자에 매납한 이 비파형 청동검은 고조선 시대인 점으로 미루어보아도 고조선 국가하의 역사가 아닐까??
전글에서 묘족은 역사는 전혀 모르지만 조상은 치우천자라 믿고 시청앞 광장에 4층높이 치우상을 조각했단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고조선 역사는 국가적인것 이외에 지방행정단위가지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단군이 시조이고 고조선(옛조선)이 우리의 모태로 생각하고 알고있다.
그러면 기원후 출현하는 삼국시대 이전에 우리의 조상들은 고조선인 아닌가??
역사학자들의 역사규정에 지금도 정립할 수 없다하지만 지금 삼국을 넘어서는 문물 출토에 고조선이라 이름
붙인다면 오류일까??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
나는 단양을 자주 드나들다보니 영춘에 온달성 내력도 잘 안다.
그런데 구리시는 고구려시라면서 광개토태왕비 모조품도 시청앞에 건립하고 아차산엔 온달산성 사적이 있다.
어느쪽이 진짜 온달산성일까?? 이래도 아무런 문제가 야기되지 않는다.
단양 사인암을 돌아서 도락산이 있다.
이곳 정산에 오르면 공민왕 귀양지 터도 있다. 그런데 역사에 공민왕이 귀양간것이 실려있는가??
허난설헌은 초당이 생가였다고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는 자기네 문화라 우긴다.
더 심한 것은 우륵은 제천과 충주, 경상도 3파전으로 자기네 문화라 주장한다.
이런데 유독 평창은 호재들도 발로 차버리는듯 하다,
더 다른 이야기로 하자.
평창은 참말 조은 소재들을 주변에 다 놓쳤다.
정선 아리랑의 대부분의 원조는 한치뒷산 청옥산의 평창아리랑이고 정선 아리랑도 평창과 같은 공간성에 후렴이
없었다.
후렴이 없다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라 이지역 태백산간의 메나리조 아라리는 가락이기 전에 삶의 소리라.
이 긴글과 정선 아리랑의 이론적 모순은 이미 밝혀 놓았다.
또하나 요즘들어 평창의 잃어버린 역사에 판관대를 문화재로 상정하려는 준비에 좋은 안간이지만 평창인들은
율곡의 고향을 상실시켰다.
평창읍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50여년전에 송어를 양식한 원조이고 지금도 보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송어축제는 진부에서 한다. 초교때 미군 헬기가 송어 사려고 상리 송어장에 내리면 우린 헬기구경하려고
2km를 담박질에 뛰어가곤 했다.
봉평의 메밀꽃 축제는 메밀 국제학술회의까지 개최한다.
그런데 그의 주체인 이효석은 봉평에 초교 2년전부터 2년간 의붓엄마와 살았던것밖에 없고 평창초교에 입학하여
6년간 초교생활의 그의 자서전같은 "영서의 기억'을 보면 그의 정서의 대부분은 평창의 생활에서 자란 것이다.
그래서 평창의 지주환 시인밈등이 효석 문학의 밤 3회를 열고는 박동락편에 봉평으로 이사간 것이다.
또 하나 천동엔 도마치 입구에 김삿갓의 차남 익균이 살았었고 그의 무덤도 천동리 고 강병준님 밭 주변에 있다가
언젠가 이장 되있다.
익균은 가장으로 아버지를 모시러 대구고 진주등지를 다녔고 화순서 타계 3년후에 시신을 모셨다.
그런데 이사하고 폐허가 된 영월 삼옥리 옛 화전터에 김삿갓의 묘를 썼을까??
김삿갓의 우리가 아는 일반적 스토리엔 상식을 위배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믿고잇는지 속고 있는지 나로서는
속지 않으려 지금 나열한 평창의 일어버린 소재들을 일일이 이해가도록 기록할 터인데..
이번 평창 하리의 청동기 유골과 유적에 관해서도 잃어버린 평창의 유산에 들어가는 아픔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고조선 역사책을 검증이 안되있다 하면 덮어 두시고 인터넷 구글어스에서 중국의 시안
(서안, 장안)을 스키이 뷰로 클릭해 보십시요.
시안 주변엔 사각 스케어의 평면도들이 무수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피라미드 입니다.
시안은 중국의 고도로 중국 최초의 서울이며 한족이 아닌 조선족이 살았던 것을 분명히 느끼실 것입니다.
지난 65년도 중국은 단 한기의 비라밋 발굴 조사에 3일만에 강제 철수하였는데 이곳에서 김치의 발효문화도 나온
고조선의 유물이기에 중국정부는 천여기의 피라맛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조선을 우리의 역사가들은 아직 청동기시대라고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도 주체성이 없는것은
아닐까??
역사의 주체성이란 ??
위에서 언급한 광개토태왕은 고구려 영토를 확장한 위대한 위인이며 우리가 총체적 난국에 일데 강점기로 들어간것은
일본의 강탈이라는 이중적 언어를 사용하고서는 광개토태왕의 자랑만 하고 있는것이 주체성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추체성이 있는 민족이라면 아픔을 참고 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노력하여야 하지 언제까지나
일본 탓만 해서야...
그것의 하나가 일제가 만든 조선사 편수회는 한국역사를 조작하려는 역사가관이며 이에 사환이던 이병도가 해방이
되고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며 식민사관식 역사로 고조선이 없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언제까지 이병도를 매도만
하고 있어야 합니까??
우리 역사가들에겐 앞으로도 고조선 역사는 이야기 되지 않을듯 싶지만 본인 후세백작은 고조선 단군의 자손으로
단군역사를 자랑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 혼지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부가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주체성있는 민족이라면 남 탓만 하고 잇슬게 아니라 우리도 묘족의 예처럼 스스로 개척하여 돌파구를
열고 단군 자손임의 긍지를 표출하는 것이 발전적 문화라 생각하며 본인 후세백작은 위 본문의 청동기 유물을 고조선
인으로 바꿔쓰는 주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글의 탈고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 철자등의 오자나 탈자는 이해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이로서도 모자라면 또다른 시각에서 고조선을 이해한번 하시렵니까??